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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Culture/영화 Movie

[영화리뷰] 영화 조커(JOKER)의 메세지 (주의: 스포 약간 포함) -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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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ovie

조커 JOKER

조커(JOKER), 2019.10

 

 

조커는 조커가 어떻게 악당으로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그린다. 처음부터 조커(아서)의 갑갑한 일상이 그려진다. 서서히 고구마 같이 목을 조여온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커를 만든건 고담이라는 사회지, 조커 자신이 아니야'. 점점 아서는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길로 내몰리면서 결국 폭발하는데까지 이른다. 그 폭발은 빈부격차와 쓰레기 처리 문제로 시끄러웠던 고담시 폭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절대적인 악, 절대적인 선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억울한 상황에서도 살인이 정당화 되지 못하며 무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그렇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조커의 편의 섰다가 잠시 옮겨갔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권선징악이라는 결말에 익숙하다면 영화가 끝났을 때 희열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조커의 편이라도 뭔가 큰 희열은 느껴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감독이 다루고 싶은 주제가 선과 악이 아니어서가 아닐까?

 

확실하진 않지만, 추측해보건데 이 영화에는 이런 메세지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조커의 반대편에 선 머레이 프랭클린(동경하는 코미디언), 토마스 웨인(숨겨진 아버지라고 생각됐던 시장)의 결말 뿐 아니라 아서가 조커가 된 것까지 이유가 있었다. 무언가를 거둔다면 반드시 뿌린 것이 있다는 것이다. 

 

고담시 시민들의 불만은 쌓이고 쌓여 폭동으로 터졌고, 아서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아서에게 일말의 희망을 갖게 했던 대상들에게 돌아갔다. 영화의 80%는 뭔가를 꾹꾹 눌러담아서 압축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20%는 그 것이 더 이상 압축되지 못할 때 되려 폭발하고 팽창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조커에서 그 폭발에 불을 붙힌건 멸시와 조롱이었다.

 

조커가 머레이를 살해하면서 말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 라는 말이 떠오른다. 과연 최소한의 배려로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을까? 내가 느끼기엔 조커에게 필요했던 건 배려보다는 작은 사랑이었고 변치 않는 희망이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아서의 어머니인 페니 플렉이 과거를 숨겨왔던 것을 알았을 때 조커는 배신감을 느꼈다. 자기가 겪고 있는 정신 질환이 어머니와 그의 애인의 학대때문이었을 줄이야... 또 우상이었던 머레이가 나를 한낱 웃음거리로 사용해 조롱거리가 되게할 줄이야. 어머니의 희망이었던 토마스 웨인(숨겨진 아버지)가 어머니의 정신병으로 만든 망상이었다고? 아서는 다양하게 통수를 맞고 조커로 변해갔다. 몇몇은 사실이 아님을 암시하지만 일단 그가 받아들이기에는 모든 거짓과 조롱이 사실이었다. 현실이었다. 마지막 가늘고 가는 신뢰의 끈마저 끊긴 그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이는 조커에게만 국한되는 사실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삶을 지탱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가 깨졌을때 삶의 의미는 빛바래 버린다. 삶을 지탱하는 무언가가 어떤 관계일 수도 있고, 목표일 수도 있으며 원초적인 욕망일 수도 있다. 우리는 결국 살기 위해 그 무언가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자신이 어느 누구의 무언가라면 자신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배려는 결국 삶의 이유가 될지도 모르는 내가 가진 것들을 온전히 빛나게 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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